전체 글164 1796~1797년 영미 공황: 토지 투기 붕괴와 은본위제 위기 신생 미국 경제와 토지 투기 열풍미국 독립 이후 18세기 후반은 새로운 국가 체제가 정립되는 과도기였으며, 특히 서부 개척과 경제 확장은 국가적 과제였습니다. 당시 연방정부는 국토 매각을 통한 재정 확충을 시도했고, 이는 광범위한 토지 투기 열풍으로 이어졌습니다. 수많은 민간 투자자와 투기꾼들이 아직 정착되지 않은 서부 영토의 토지를 미리 사들이는 방식으로 투기에 나섰고, 이러한 수요는 국채와 민간 신용의 과도한 팽창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은행들은 토지담보 대출을 무분별하게 승인했고, 이는 곧 신용 시스템의 취약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시기 미국의 금융 시스템은 아직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으며, 중앙은행 기능도 초보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제1차 연방은행(First Bank of the United States.. 2025. 7. 14. 2012년 키프로스 금융위기: 예금 차등 손실 부과의 전례 유로존 주변국의 그림자, 키프로스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 재정위기는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을 거쳐 유로존 전반에 파장을 일으켰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12년, 지중해의 소국 키프로스도 위기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키프로스는 그리스와 깊은 경제적·금융적 연계를 가진 국가로, 자국 은행들이 그리스 국채를 대거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진한 그리스 채무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들 국채의 가치가 크게 손실을 입게 되면서, 키프로스 금융권 전체가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 특히 키프로스 제2은행이었던 ‘라이키 은행’과 최대 은행 ‘키프로스 은행’은 사실상 지급불능 상태로 전락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한 은행 구조의 부실을 넘어서 국가 전체의 재정 불안.. 2025. 7. 14. 2001년 아르헨티나 디폴트 사태: 국가 부도의 전형적인 사례 고정환율제와 외채 의존 경제의 태생적 한계1990년대 초, 아르헨티나는 하이퍼인플레이션과 만성적인 경제 불안정을 해결하기 위해 급진적인 개혁 정책을 단행하였다. 가장 핵심적인 조치는 미국 달러와 아르헨티나 페소를 1:1로 고정하는 ‘통화 위원회’ 제도의 도입이었다. 이 제도는 물가 안정을 가져오고 외국인 투자 유치에도 효과를 보였으나, 장기적으로는 경제의 유연성을 심각하게 훼손하였다. 고정환율제 아래에서 아르헨티나는 독자적인 통화정책을 시행할 수 없었고,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를 조절하기 위해 외채에 의존하는 구조가 고착되었다. 그 결과, 199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국가의 외채 규모는 급속히 증가하게 되었다. 특히 1998년 이후 브라질, 러시아 등 주변국에서 외환위기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투자자들의 .. 2025. 7. 13. 1994년 멕시코 페소 위기(테킬라 위기): 개방경제의 그림자 자유무역과 자본 개방의 빛과 그림자1990년대 초반, 멕시코는 신자유주의 개혁과 글로벌화 전략을 통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카를로스 살리나스 대통령 하에서 추진된 구조개혁은 국영기업의 민영화, 재정건전화, 무역자유화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가장 상징적인 결과는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발효였다. 이를 통해 멕시코는 북미 경제권의 일원으로 편입되며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고,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으로 막대한 해외자본이 유입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개방정책은 단기 외화 유입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를 만들어냈으며, 자본 이탈 가능성에 대한 대비는 미흡했다. 멕시코 정부는 외국 자본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지속했고, 환율은 달러화에 연동된 페그제 형태로 유지되.. 2025. 7. 11. 1982년 라틴아메리카 외채 위기: 과도한 차입이 불러온 신흥국 경제 붕괴 오일 쇼크와 라틴아메리카의 외채 급증1970년대 초, 세계 경제는 두 차례에 걸친 오일 쇼크로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1973년과 1979년 석유 가격이 폭등하면서,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급격한 경상수지 악화에 직면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들 국가는 외국 자본에 의존하게 되었고, 국제 상업은행과 금융기관들은 유동성이 풍부한 중동 산유국의 자금을 기반으로 라틴아메리카에 대규모로 대출을 제공했다. 당시에는 낮은 금리와 고성장 기대로 인해 차입 확대에 대한 경계심이 낮았고,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이를 기회로 인식해 인프라 개발, 산업 육성, 도시화 프로젝트에 자금을 집중 투입했다. 그러나 이 같은 외채 의존적 성장 모델은 본질적으로 취약한 구조를 내포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차.. 2025. 7. 10. 1971년 닉슨 쇼크: 금과 달러의 연동 중단과 변동환율 시대 개막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 통화 질서를 안정시키기 위한 역사적 합의였다. 이 체제는 미국 달러를 중심으로 한 금환본위제 구조를 기반으로, 미국 달러는 금(1온스당 35달러)과 교환 가능하며, 다른 나라의 통화는 달러에 고정되는 방식이었다. 전후 미국은 금 보유량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었고, 생산력과 수출력에서도 압도적인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이 시스템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의 재정 상황은 점차 악화되기 시작했다. 베트남 전쟁 장기화, 케네디와 존슨 정부의 복지 지출 확대는 막대한 재정 적자를 유발하였고, 이는 달러 공급 과잉으로 이어졌다. 1960년대 후반에 이르자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와 해외 유동성 과잉이 문제가 되기 시작했.. 2025. 7. 9. 1987년 '블랙 먼데이' 전조 없는 폭락, 1987년 10월 19일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뉴욕 증권거래소에서는 역사상 유례없는 주가 폭락이 발생했다. 이날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단 하루 만에 22.6% 하락했는데, 이는 미국 주식시장 역사상 최대 단일 일간 하락률로 기록되어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이날의 충격은 단지 미국에 그치지 않았고, 아시아와 유럽 시장도 연쇄적으로 폭락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이 동시에 붕괴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사건은 ‘블랙 먼데이(Black Monday)’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이후 주식시장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인식과 금융 기술의 발전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당시 뉴욕 증시는 이미 몇 달 전부터 점진적인 조정을 겪고 있었지만, 폭락의 전조가 명확하게 포착되지는 않.. 2025. 7. 8.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고정환율제와 외채 의존 구조의 불안정성1990년대 초중반 동아시아 국가들은 빠른 경제 성장과 함께 국제 금융시장에서 '아시아의 기적'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한국 등은 높은 성장률과 투자 유입으로 신흥 경제국으로 부상했지만, 이들 대부분은 고정환율제도를 유지하면서도 외국 자본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적인 취약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특히 달러에 연동된 고정환율제는 환율 리스크를 낮추는 대신, 자국 통화가 과대평가되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이는 수출 경쟁력 저하와 외환보유액 감소로 이어졌다. 더욱이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서 국제 자금은 다시 미국으로 회귀했고, 이는 신흥국에 대한 자본 유입 둔화로 나타났다. 아시아 국가들은 단기 외채를 늘려 경상수지 적자를.. 2025. 7. 8. 2008년 금융 위기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금융상품의 복잡화에서 비롯된 금융 위기2008년 금융 위기의 발단은 미국의 주택시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저금리 정책과 주택담보대출 완화는 부동산 가격 상승을 촉진했다. 금융기관들은 소득이 불안정하거나 신용등급이 낮은 계층에게도 적극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해주었으며,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급속히 확대되었다. 이 대출들은 고위험 상품이었지만, 이를 여러 대출로 묶어 만든 부채담보부증권(CDO) 등은 신용평가사로부터 높은 등급을 받아 전 세계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에게 팔렸다. 이 과정에서 리스크는 은폐되고 분산되었으며, 다수의 기관이 이 상품에 투자함으로써 위험 노출이 확대되었다. 특히 파생상품인 CDS(신용부도스왑)의 활용이 늘어나면서, 투자자들은 채권이 .. 2025. 7. 8. 이전 1 2 3 4 5 ··· 1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