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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자 역사

1987년 '블랙 먼데이'

by info-now-blog 2025.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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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조 없는 폭락, 1987년 10월 19일

1987년 10월 19일 월요일, 뉴욕 증권거래소에서는 역사상 유례없는 주가 폭락이 발생했다. 이날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단 하루 만에 22.6% 하락했는데, 이는 미국 주식시장 역사상 최대 단일 일간 하락률로 기록되어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이날의 충격은 단지 미국에 그치지 않았고, 아시아와 유럽 시장도 연쇄적으로 폭락하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이 동시에 붕괴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사건은 ‘블랙 먼데이(Black Monday)’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이후 주식시장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인식과 금융 기술의 발전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당시 뉴욕 증시는 이미 몇 달 전부터 점진적인 조정을 겪고 있었지만, 폭락의 전조가 명확하게 포착되지는 않았다. 주가수익비율(PER) 상승, 장기금리 상승, 무역 적자 확대 등 일부 경고 신호가 있었지만, 그 어떤 지표도 하루 만에 지수가 20% 넘게 하락할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는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 자체를 흔드는 사건으로, 투자자와 규제 당국 모두에게 ‘통제 불가능한 하락’이라는 새로운 공포감을 안겨주었다. 무엇보다 시장의 구조적 문제와 기술적 거래 시스템의 미비점이 이 위기를 증폭시켰다는 점은 이후 수년 간 금융 시스템 개혁의 단초가 되었다.

 

 

1987년 '블랙 먼데이'

 


프로그램 매매와 시스템 리스크의 현실화

1987년 블랙 먼데이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프로그램 매매(Program Trading)였다. 프로그램 매매란 사전에 설정된 조건에 따라 컴퓨터가 자동으로 매도나 매수 주문을 실행하는 거래 방식인데, 당시에는 주가가 일정 수준 하락하면 자동으로 대량 매도하도록 설계된 포트폴리오 보험 전략이 널리 사용되었다. 이 전략은 시장이 하락하면 손실을 줄이기 위해 선물을 팔고, 상승 시에는 매입하도록 설계되었지만, 이날처럼 갑작스럽게 시장이 급락할 경우 매도 주문이 연쇄적으로 쏟아지는 구조적 위험을 가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자동화된 대량 매도 주문이 투자자들의 공포를 더욱 증폭시켰고, 이는 또 다른 프로그램 매매를 유발하는 ‘매도-공포-매도’의 악순환을 만들어냈다. 시장 참여자들은 실제로 회사의 가치나 재무 구조와 무관하게 매도에 동참했고, 이는 유동성 부족과 함께 시장 기능의 마비를 초래하였다. 증권거래소의 주문 시스템은 당시 폭증하는 거래량을 처리하지 못해 시스템 장애가 발생했고, 일부 주문은 실제 거래가 되지 않거나 지연되는 사태도 발생했다. 기술적 문제와 투자자 심리가 결합되어 금융시장은 단 하루 만에 극단적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시장의 반응과 정부·중앙은행의 대응

폭락 직후 미국 정부와 연방준비제도(Fed)는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다. 당시 연준 의장이던 앨런 그린스펀은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 회복을 최우선으로 삼고, 필요시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실제로 연준은 단기 금리를 인하하고, 은행 시스템에 충분한 유동성을 주입하여 금융시장 전반의 동요를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미국 재무부도 주요 은행들과의 협조를 통해 금융기관들의 대출 연장을 유도하며, 신용 경색을 막기 위한 조치를 신속히 취하였다.

 

이러한 정책적 대응은 예상보다 빠른 회복으로 이어졌고, 다우지수는 이후 몇 달 내에 상당한 수준까지 반등하였다. 하지만 투자자들의 심리에는 여전히 깊은 불안이 남아 있었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금융당국은 프로그램 매매와 시스템 리스크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증권거래소는 이듬해부터 ‘서킷 브레이커(Circuit Breaker)’ 제도를 도입하여, 일정 수준 이상 주가가 하락할 경우 거래를 일시 중단시키는 제도를 마련하게 된다. 이는 블랙 먼데이의 경험에서 출발한 새로운 시장 안전장치였으며, 이후 다양한 형태로 세계 각국에 도입되었다.


금융시장의 구조 변화와 장기적 영향

블랙 먼데이는 전통적인 시장 참여자들에게 충격을 주었을 뿐 아니라, 금융 시스템 자체의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시장 참여자들이 컴퓨터 기반 알고리즘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동시에 시장에서의 기술 의존도를 점검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이후 금융기관들은 알고리즘 매매 시스템의 리스크를 제한하기 위한 내부 통제 장치와 실시간 리스크 모니터링 시스템을 강화하게 되었고, 이는 금융 기술(FinTech)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또한 투자자들은 단기적인 시장 흐름에 의존하기보다는 펀더멘털과 장기 전략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많은 기관투자자들은 변동성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분산 투자와 리스크 헤지 전략을 강화하였고, 시장 전체는 보다 안정적인 구조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블랙 먼데이는 단순한 주가 폭락 사건이 아니라, 현대 금융시장이 안고 있는 구조적 위험을 드러낸 역사적 전환점이었다. 이는 이후 닷컴 버블,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팬데믹 급락 등 다양한 위기 상황에서 그 교훈이 반복적으로 인용되며, 시장 시스템의 안전성을 끊임없이 점검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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