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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 위기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금융상품의 복잡화에서 비롯된 금융 위기2008년 금융 위기의 발단은 미국의 주택시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저금리 정책과 주택담보대출 완화는 부동산 가격 상승을 촉진했다. 금융기관들은 소득이 불안정하거나 신용등급이 낮은 계층에게도 적극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해주었으며, 이른바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급속히 확대되었다. 이 대출들은 고위험 상품이었지만, 이를 여러 대출로 묶어 만든 부채담보부증권(CDO) 등은 신용평가사로부터 높은 등급을 받아 전 세계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에게 팔렸다. 이 과정에서 리스크는 은폐되고 분산되었으며, 다수의 기관이 이 상품에 투자함으로써 위험 노출이 확대되었다. 특히 파생상품인 CDS(신용부도스왑)의 활용이 늘어나면서, 투자자들은 채권이 .. 2025. 7. 8.
2020년 WTI 원유 선물 가격의 마이너스 전환 팬데믹 충격과 수요 붕괴2020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 실물 경제에 극심한 충격을 주었고, 그중 가장 직격탄을 맞은 산업 중 하나가 에너지 산업이었다. 봉쇄 조치와 이동 제한으로 항공, 해운, 육상 운송이 대폭 감소했고, 전 세계 원유 수요는 하루 약 3,000만 배럴 이상 줄어들었다. 미국, 유럽, 아시아 할 것 없이 정유소는 가동률을 줄였고, 항공사들은 항공편을 90% 이상 감축했다. 이처럼 실물 수요가 급감하는 와중에도, 원유 생산량은 단기간에 줄지 않아 시장에선 심각한 초과 공급이 발생했다. 특히 미국 내 원유 생산은 셰일 혁명 이후 꾸준히 증가한 상태였고, 수요 붕괴와 맞물리면서 유례없는 재고 누적 현상을 낳았다. 이 시기 세계 최대 원유 저장시설 중 하나인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쿠싱.. 2025. 7. 6.
1992년 영국 금융위기 '블랙 웬즈데이' 유럽 환율 메커니즘(ERM)과 영국의 가입 배경1990년 영국은 유럽 통화 통합의 일환으로 유럽 환율 메커니즘(ERM)에 가입하였다. ERM은 각국 통화 간 환율 변동폭을 ±2.25% 이내로 제한하여 유럽 내 경제 안정성과 통화 일체감을 높이는 제도로, 향후 유로 도입의 기반이 되는 정책이었다. 당시 영국 보수당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고 금융시장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ERM 가입을 강력히 추진했으며, 파운드화는 1마르크당 약 2.95마르크의 기준 환율로 시스템에 진입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영국 경제는 이미 경기 침체기에 있었고, 다른 ERM 회원국들과는 경제 조건이 상당히 달랐다. 영국은 금리를 높게 유지하고 있었으며, 실업률 상승과 부동산 시장 침체 등으로 내수 경제의 활력이 낮은 상태.. 2025. 7. 6.
1826년 미국 금융 공황 1820년대 미국은 시장경제 확장과 함께 상업적 낙관주의가 팽배하던 시기였다. 운하 건설, 철도 계획, 은행 설립, 제조업 투자 등에서 민간 자본의 유입이 크게 증가했으며, 특히 뉴욕과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한 금융 허브들은 일종의 ‘기업 붐’을 경험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상장 요건이 명확하지 않았고, 투자자 보호 장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신생 기업들이 허위 혹은 과장된 정보를 내세워 자금을 모집하는 일이 흔했다. 대표적인 예로, 여러 주식회사가 실제로는 운영되지 않거나 실체가 모호한 사업 계획만으로도 대중으로부터 수많은 투자를 유치하곤 했다. 이 같은 투기적 환경에서, 투자자들은 기업 실적보다 소문에 의존해 주식을 사고파는 일이 잦았고, 이는 금융 시스템 전반의 내구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이.. 2025. 7. 6.
1882년 파리 증권 거래소 붕괴 유니옹 제네랄의 과도한 팽창과 거품 조성1882년 파리 증권거래소 위기의 중심에는 카톨릭 보수 진영의 지원을 받은 유니옹 제네랄(Union Générale) 은행이 있었다. 1878년 설립 직후 이 은행은 보수적 엘리트층으로부터 신속히 신뢰를 얻으며 자산 규모를 증폭시키기 시작했다. 1879년 약 500 프랑이던 주가는 불과 몇 년 만에 3,000 프랑을 돌파했고, 이 과정에서 철도, 보험, 광산, 해외 프로젝트 등 실물 자산이 불확실한 분야에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었다. 이러한 팽창은 수익성보다 레버리지에 기반한 회계 전략이었으며, 회계부정과 과도한 자본확충 청약으로 거품이 조성되었다. 유니옹 제네랄 창립자 본투(Bontoux)는 은행 경영을 음모론으로 탈색하려 했고, 좌파 언론은 유태인·프리메이슨 등의.. 2025. 6. 29.
1840년대 영국 철도 광풍(Railway Mania) 산업혁명, 금리 하락 그리고 영국 철도 붐의 전조산업혁명으로 인해 19세기 초 영국은 방대한 자본과 기술력을 토대로 철도 혁명의 초입에 들어섰습니다. 1830년 세계 최초 상업용 간선철도인 리버풀·맨체스터 노선이 개통되며 여객 및 화물 운송 분야에서 철도의 경제적 효용이 명확히 드러났습니다. 이후 1830년대 중반까지 경기 회복이 가시화되면서 영국 경제는 '팽크 오브 1837' 공황 이후 다시 상승 국면으로 진입했고, 영란은행은 금리를 낮추어 주택이나 산업자금뿐 아니라 철도 자금 조달에 용이한 환경을 조성했습니다. 이 같은 저금리와 경제 회복은 철도 산업에 대한 투자 열기를 자극했고, 중산층과 개인 투자자가 주식 시장에 폭넓게 참여하게 된 배경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 철도 업계 관계자들은 ‘새로운 시대의.. 2025. 6.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