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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채권 시장 위기 1994년 채권 시장 위기 목차1. 저금리 시대와 과열된 채권 시장2. 연준의 금리 인상과 시장 공황3. 유럽·아시아 시장으로의 확산4. 시스템 리스크와 시장 역동성5. 교훈과 현재 채권 시장의 시사점 1. 저금리 시대와 과열된 채권 시장1994년 이전,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은 1990년대 초반 경기 침체 이후 낮은 금리를 유지하며 경제 회복을 도모하고 있었다. 연방준비제도(Fed)는 단기 금리를 3%대 수준에서 유지하며 경기 부양에 주력했고, 일본도 엔화 안정화 정책을 통해 실질 금리를 낮추었다. 이로 인해 채권 수익률은 사상 최저 수준에 머물렀으며, 채권 투자에 대한 기대 심리는 급속히 확대되었다. 많은 투자자들이 장·단기 금리 차이로 인한 캐리 트레이드(carry trade)에 참여하며.. 2025. 6. 12.
1907년 미국 금융 공황 1907년 미국 금융 공황 목차1. 월가를 강타한 혼란의 서막2. 뉴욕 신탁회사들의 위기와 도미노 현상3. 존 피어폰 모건의 개입과 민간 구제4. 중앙은행의 필요성과 제도 개혁 논의5. 1907년 공황이 남긴 현대적 교훈 월가를 강타한 혼란의 서막1907년 미국 금융 공황은 단순한 경제 위기를 넘어, 현대 금융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이 위기는 뉴욕 증권거래소에서의 주가 급락과 대형 신탁회사의 도산 위기에서 시작되었다. 20세기 초 미국은 빠른 산업화와 금융 확장을 겪으며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있었지만, 금융 규제는 미비하고 시장은 불안정한 기반 위에 놓여 있었다. 특히, 당시는 연방준비제도(Fed)가 설립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위기 시 중앙은행의 개입이라는 안전.. 2025. 6. 9.
1986년 런던 금융시장 '빅뱅' 1986년 런던 금융시장 '빅뱅' 목차1. 빅뱅 이전의 런던 금융시장2. 빅뱅의 핵심 조치들3. 금융산업의 급속한 팽창4. 규제 완화의 명암5. 빅뱅의 유산과 현대 금융에 주는 교훈 1. 빅뱅 이전의 런던 금융시장 1986년 이전의 런던 금융시장은 전통과 관습이 지배하는 매우 보수적인 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증권 중개인과 거래인(dealer)은 분리되어 있었고, 외국계 금융기관은 런던 증권거래소에서 직접 거래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거래 방식은 대부분 수작업이었으며, 전화로 호가를 부르거나 장부에 직접 기록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구식 거래 방식은 점차 빠르게 변모하는 세계 금융시장 환경 속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당시 영국은 마거릿 대처 총리의 강력한 시장 자유화 정책에.. 2025. 6. 5.
1931년 유럽 은행 위기 1931년 유럽 은행 위기 목차1. 대공황과 유럽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2. 오스트리아 크레디탄슈탈트(Creditanstalt)의 붕괴3. 독일 다나트은행(Danatbank)의 붕괴와 위기의 확산4. 정치적 영향: 나치당의 부상5. 현대 금융에 주는 교훈시사점1. 대공황과 유럽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단순한 경기 침체를 넘어, 세계 금융 질서 전반을 뒤흔드는 글로벌 위기로 확산되었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 과정에서 미국 자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으며, 특히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미국 은행들로부터 대규모 단기 자본을 차입하여 산업화와 복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처음부터 불안정했습니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고 자본을 회수하기 시작하면서.. 2025. 5. 30.
1763년 암스테르담 금융 위기 1763년 암스테르담 금융 위기 목차1. 전쟁 후 경제 환경과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2. 드 뇌빌 은행의 붕괴와 위기의 확산3. 위기의 국제적 파급 효과4. 암스테르담 은행의 대응과 위기 극복5. 위기의 교훈과 현대 금융에의 시사점 1763년 암스테르담 금융 위기는 18세기 유럽 금융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이 사건은 복잡한 금융 구조와 과도한 레버리지, 그리고 전쟁 이후의 급격한 경제 변화가 결합되어 발생한 위기였다. 이 글에서는 당시의 배경, 위기의 전개 과정, 주요 인물과 기관의 역할, 그리고 위기가 남긴 교훈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1. 전쟁 후 경제 환경과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1763년 2월, 7년 전쟁이 종결되면서 유럽의 경제 환경은 급격히 변화하였다. 전쟁 기간 동안 국가.. 2025. 5. 29.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 금본위제의 종식과 달러 중심 체제 구축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44년, 연합국은 전후의 국제 경제 질서를 재편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1930년대 대공황과 그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경쟁적 평가절하, 외환 통제 등은 세계 무역과 금융을 극단적으로 위축시켰고, 그로 인해 각국은 협력보다 자국 중심의 폐쇄적 경제 정책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흐름이 국제 갈등을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전쟁 후에는 보다 안정적이고 협조적인 국제 통화 체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공유되었다. 특히 미국과 영국은 이 문제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고, 전 세계 주요 44개국이 한자리에 모여 브레튼우즈 체제를 설계하게 된다. 브레튼우즈 회의의 주요 내용과 결정1944년 7월, 미국 뉴햄프셔주의 작은 마을 브레튼우즈에서 열린 회의에서는 국제 통화 체제의.. 2025. 4. 29.
1931년 오스트리아 크레디트안슈탈트 은행 파산: 대공황의 유럽 확산 계기 1929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단순한 증시 폭락을 넘어, 글로벌 자본 흐름을 붕괴시키는 거대한 경제적 충격을 일으켰다. 당시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재건 과정에서 미국 자본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으며, 특히 오스트리아와 독일은 대규모 외채와 단기 차입을 통해 경제 성장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러한 구조는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한 상태였으며, 미국의 금리 인상과 자본 회수가 본격화되자 유럽 각국의 외환 보유고는 급속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은행들은 예금 인출 요구에 대응하지 못했고, 이는 곧 유동성 위기로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오스트리아의 금융 시스템은 더욱 심각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었다. 중소형 은행의 부실이 누적된 상황에서, 중앙은행은 충분한 예비 자금 없이 국제 자금 흐름에.. 2025. 4. 28.
1720년 영국 사우스시 버블: 과대 기대가 부른 주가 폭등과 폭락 18세기 초 영국은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등 오랜 전쟁을 치른 후 막대한 국가 채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채를 관리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고, 바로 이때 등장한 것이 사우스시 컴퍼니(South Sea Company)였다. 1711년에 설립된 이 회사는 영국 정부의 부채를 인수하는 대신, 스페인령 남미와의 무역 독점권을 부여받았다. 실제로 이 무역은 제한적이고 정치적으로도 불확실한 면이 많았지만, 회사는 남미에서 금, 은, 노예, 향료 등이 대규모로 유입될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주었다. 이는 회사의 주식이 국가 채무 상환 수단으로 기능하게끔 만들었고, 투자자들은 정부가 이를 뒷받침한다는 믿음 속에 사우스시 컴퍼니의 주식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우스시 컴퍼니는.. 2025. 4. 25.
1720년 프랑스 미시시피 버블: 존 로와 금융 신기루의 붕괴 18세기 초 프랑스는 루이 14세가 벌인 오랜 전쟁들로 인해 극심한 재정 위기를 겪고 있었다. 국고는 바닥났고, 국가 채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재정 시스템 전체가 붕괴 직전이었다. 이와 같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스코틀랜드 출신의 금융 이론가이자 도박사였던 존 로(John Law)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프랑스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화폐 체계와 금융 모델을 제안했고, 종이화폐 발행과 중앙은행적 기능을 수행하는 은행 설립을 주장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국왕 루이 15세의 섭정인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에 의해 받아들여졌고, 1716년 일반은행(Banque Générale)이 설립되었다. 존 로는 금과 은에 기반하지 않고 신용을 기반으로 한 종이화폐가 더 효율적인 교환 수단이 될 수 있.. 2025. 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