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학과 금융의 역사

1866년 영국 금융 공황: 오버엔드 거니의 파산

by info-now-blog 2025. 7. 17.
반응형

19세기 중반, 영국은 세계 최대의 산업국이자 금융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급격한 경제 팽창과 함께 금융 시장도 비약적으로 성장했으며, 특히 철도, 광산, 해운업 등의 인프라 분야에 대한 투자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런던 금융가는 이러한 호황에 힘입어 대규모 신용을 공급하며 고수익을 추구하는 구조로 재편되었습니다. 이 시기 수많은 중소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은행과 금융기관에 의존하였고, 대출과 어음 할인(discounting)은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과잉 유동성 공급은 곧 시장의 거품을 형성하게 되었고, 영국 경제는 점점 더 투기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오버엔드 거니(Overend, Gurney and Company)는 당시 가장 영향력 있는 금융기관 중 하나였습니다. 1800년대 초반부터 영국 금융 시장에서 안정적인 어음 할인 전문 은행으로 명성을 쌓아온 이 회사는, 1850년대 이후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단행하면서 대규모 자산을 운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들이 취급한 자산의 상당 부분은 고위험 장기 채권이었고, 특히 유동성이 낮은 산업 부문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오버엔드 거니는 단기 자금을 조달해 장기 자산에 투자하는, 이른바 만기 불일치 구조의 위험한 경영 전략을 고수하고 있었으며, 이는 위기 상황에서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영국 금융 공황: 오버엔드 거니의 파산

 


오버엔드 거니의 파산과 시장의 공포

1866년 5월 10일, 오버엔드 거니는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지급 불능을 선언합니다. 이는 단순한 기업 파산을 넘어, 런던 금융 시장 전체를 뒤흔드는 충격파로 작용했습니다. 당시 오버엔드 거니는 약 1800만 파운드(현재 가치 수십억 파운드에 해당)의 부채를 안고 있었으며, 이를 상환할 능력이 없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예금자와 투자자들은 극심한 공포에 빠졌습니다. 파산 소식이 발표된 날 런던의 금융가는 극심한 혼란에 휩싸였고, 수많은 은행과 금융기관 앞에는 예금 인출을 요구하는 군중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런” 사태, 즉 예금 인출 사태가 대규모로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금융기관들은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산을 헐값에 매각하거나, 중앙은행에 긴급 유동성 지원을 요청하게 되었고, 이는 금융 시스템 전반에 위기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지방 은행들과 투자회사들은 오버엔드 거니와의 거래 관계로 인해 직접적인 타격을 입었고, 그중 일부는 연쇄적인 파산에 이르게 됩니다. 당시 영란은행은 금본위제에 따라 발권 한도에 제약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즉각적인 유동성 공급에 한계가 있었으며, 금융기관들의 신뢰 회복은 더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1866년 금융 공황은 단순한 기업 파산이 아닌, 시장 심리의 붕괴와 시스템 리스크의 현실화라는 심각한 교훈을 남깁니다.


정부와 영란은행의 대응

오버엔드 거니의 파산 이후 영란은행은 시장 안정화에 나서야 했지만, 당시 통용되던 1844년 은행헌장법(Bank Charter Act)은 중앙은행이 자의적으로 통화 공급을 확대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금 보유량 이상의 지폐 발행을 금지한 이 법은 원칙적으로 신중한 통화정책을 유도하려는 목적이 있었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신속한 대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결국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은행헌장법의 일시 정지를 허용함으로써, 영란은행이 예외적으로 추가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이 조치는 금융시장의 불안을 일부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영란은행은 고금리로 긴급 대출을 제공하며 금융기관들의 지급 불능을 방지하였고, 이 과정에서 금융 질서의 회복에 기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경험은 영국 금융 당국에 큰 반성을 남겼습니다. 과도한 자유방임적 신용 팽창, 대형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 부재, 그리고 법적 유연성 부족이 위기를 심화시켰다는 자각은 이후 금융규제와 중앙은행 정책 변화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1866년 공황은 단기적 유동성 공급과 더불어 구조적 리스크의 사전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로 남게 됩니다.


역사적 의의와 현대 금융 시스템에 주는 교훈

1866년의 영국 금융 공황은 오늘날 금융 역사에서 “현대적 의미의 금융위기의 원형”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오버엔드 거니의 파산은 단일 기업의 부실이 전체 금융 시스템에 얼마나 큰 충격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 사례였으며, 이는 후대의 금융 위기에서 반복되는 공통된 구조를 예고한 셈입니다. 특히 레버리지 과다, 단기 차입-장기 투자 구조, 규제 사각지대 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도 유사한 양상을 보였고,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SIFI)의 리스크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일깨워주었습니다.

 

또한 이 사건은 중앙은행의 역할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란은행은 단순한 발권 기관을 넘어, 시장의 '최종 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로서의 책임을 자각하게 되었고, 이는 이후 금융 안정성을 중심으로 한 정책 설계의 방향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1866년 위기는 금융의 복잡성과 상호 연결성을 감안할 때, 하나의 실패가 전체 시스템 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는 교과서적 사례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 금융 규제, 스트레스 테스트, 유동성 커버리지비율 등의 기준들은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로부터 도출된 교훈 위에서 발전해온 제도적 방어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