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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금융의 역사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중동 국가들의 화폐정책 변화

by info-now-blog 2025.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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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과 1979년에 각각 발생한 제1·2차 오일쇼크는 전 세계 경제질서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특히 중동 산유국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단기간에 엄청난 외환 수익을 얻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의 통화정책과 경제구조 전반에 걸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전까지는 상대적으로 불안정했던 화폐 체계가 석유 수출로 인해 안정 기반을 갖추게 되었고, 많은 국가는 화폐를 달러에 연동시키는 페그제(고정환율제)를 채택하거나 유지하면서 통화 안정성을 확보하려 했다. 동시에, 일부 국가는 자국 통화의 국제화를 시도하거나 외환시장 개입을 본격화하며 경제 주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 글에서는 오일쇼크 이후 중동 주요 산유국들의 화폐정책 변화와 그 배경, 그리고 이 변화가 경제 및 정치에 미친 영향을 분석해본다.

 

오일쇼크와 중동 국가들의 화폐정책

 


외환 흑자와 고정환율제 선택의 배경

오일쇼크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UAE, 카타르 등 중동 산유국들은 사상 유례없는 외화 수입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들은 국가 예산의 대부분이 석유 수출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환율 안정이 곧 국가 재정의 안정성과 직결되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중동 국가는 미국 달러에 통화를 고정시키는 달러 페그제를 선택하거나 기존 체제를 유지했다. 예를 들어, 사우디아라비아 리얄(SAR)은 1986년 이후 현재까지 1달러 = 3.75리얄로 고정되어 있으며, 쿠웨이트 디나르(KWD)는 달러와 유로 바스켓에 연동된 복합 페그제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고정환율제는 인플레이션 통제, 투자 유치, 무역 안정에 유리했지만, 통화정책의 자율성이 제한된다는 단점도 함께 안고 있었다. 중동 국가들은 이를 감수하면서까지 환율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고, 이는 자국 통화의 신뢰를 높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외환보유액 확대와 중앙은행의 전략 변화

오일머니가 급증하면서 중동 국가들은 사상 최대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확보하게 되었고, 이는 곧 화폐정책의 유연성과 위기 대응 능력을 키우는 자산이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 통화청(SAMA), UAE 중앙은행, 카타르 중앙은행 등은 이 시기부터 달러 중심의 외환보유 전략을 채택하고, 일부는 금 보유량을 늘리거나 국부펀드를 통해 외환 다변화를 시도했다. 이와 함께, 각국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을 위한 기초 통화량 조절, 유동성 관리, 외환시장 개입 전략을 점차 체계화하게 된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1980년대 이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하며, 환율 고정 정책을 유지하는 동시에 금융시장 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즉, 오일쇼크 이후 중동 국가들은 단순히 석유 수익을 축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통화 시스템과 중앙은행 정책 역량을 동시에 고도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했다.


환율 안정의 이면 – 인플레이션과 수입 의존의 그림자

하지만 고정환율제와 외화 의존 구조는 중동 국가들에게도 치명적인 구조적 약점을 남겼다. 원유 가격이 하락하거나 미국 금리가 급등할 경우, 자국 통화의 환율 방어에 막대한 외환보유액이 소진될 수 있었고, 실제로 1986년 유가 급락 시기와 2008년 금융위기 때 이를 경험하게 되었다. 또한 고정환율제로 인해 통화가 과대평가되는 경우, 국내 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수입품 의존도가 높아지는 문제도 심화되었다. 이로 인해 중동 국가들은 장기적으로 자국 산업 보호, 내수 확대, 환율 유연성 확대라는 과제를 안게 되었으며, 일부 국가는 제한적 변동환율제나 환율 조정 허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오일쇼크 이후의 화폐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안정성을 확보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경제 구조 개편 없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경고를 내포하고 있었다.


오일머니 시대의 화폐정책이 남긴 교훈

오일쇼크 이후 중동 산유국들이 보여준 화폐정책의 변화는, 외화 수익이 많을수록 통화정책이 단순화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달러 페그제는 초기에 인플레이션 억제와 경제 안정화에 유리했지만, 정치·경제 리스크에 대한 복원력은 중앙은행의 전략, 산업 다변화, 자본시장 개발 등과 함께 이루어져야 실효성이 확보된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UAE, 사우디, 카타르 등은 디지털화폐(CBDC) 연구, 블록체인 기반 송금 시스템 도입 등 화폐 시스템의 혁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는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 화폐의 기능을 기술과 연결한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을 실험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결국, 오일쇼크 이후 중동 국가들의 화폐정책 변화는 단지 환율 조정에 그치지 않았고, 국가 경제의 구조 전환을 동반해야만 지속 가능한 신뢰 기반 통화체계로 연결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사례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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